[D-9] 주님 앞에서 걷는 삶


말씀이 이긴다! / 2020-11-24 13:11 / VIEW : 62 최철용


오늘의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장 31절-

 

오늘의 묵상

걷는 데에는 스릴이 없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고 안정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는 가장 높은 차원에서 힘을 소유한 것입니다.

"걷는다"는 단어는 성경에서 인격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1장 36절-

 

성경에는 추상적인 것이 절대로 없습니다.

언제나 선명한 실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되라"고 하지 않고 "내 앞에서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때 스릴을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릴을 향한 소원은 육체적으로 성령을 흉내내려 할 것입니다.

스릴을 향한 소원은 감정적인 영역에서는 부적절한 애정으로 나아가게 하여

도덕적으로 파멸하게 할 것입니다.

만일 영적인 영역에서도 계속 스릴을 원하여 날개 위에만 오르려고 하면

결국 믿음을 잃고 영적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실체는 어떤 장소에 다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앞에 주님을 모시겠다는 결단을 따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의 임재의 실체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기를 거절한다는 점입니다.

시편 기자의

 

"그러므로..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46편 1-2절-

 

라는 체험 고백은 우리가 주님의 실체에서 있을 때 가능합니다.

실체에 서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실체를 믿음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실제로 언제나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오 주님, 저를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소서"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몰론 주님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상식적인 결정이 주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주님은 가책하시고 막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때 우리는 잠잠히 주님의 임재를 바라는 가운데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중에서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의 실체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